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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2011.02.09 `가이사 중학원`
  3. 2010.12.29 1950-60년대 교회 풍경
  4. 2010.12.29 1950년대 풍경
2011. 4. 13. 2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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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대 풍경  (0) 2010.12.29
Posted by qlstnfp
2011. 2. 9. 18:51

이름은 케네스 가이사 상병 꽃다운 나이 19세.

한국전쟁중 미군40사단의 첫 번째 전사자.
병사는 죽었지만 국경을 초월한 그의 희생정신은 죽지않았습니다.
그가 목숨을 걸고 지켜냈던 전장 위에 전우들은 그의 이름으로 학교를 세웠습니다.

1948년 10월 설립된 가평 최초의 중등교육기관이며 가평중학원.

1950년 발발한 한국전쟁으로 학교는 사라집니다. 1952년 3월 아직 전쟁중이었지만 조국의 미래를 교육에서 찾았던 가평주민들은 가평 중학원의 문을 다시 엽니다.

그렇게 세워진 천막학교는 점점 늘어나는 학생들과 재정적 어려움으로 고생.


6.25전쟁이 한창이던 1952년, 미40사단 장병 1만5천명은 인천상륙작전으로 도주하는 북한군을 쫓아가 연천전투를 치른 뒤 당시 가평에 주둔하고 있던 미 제40사단에 도움을 요청하게 됩니다.

당시 조셉 클레란드(Jeseph P.Cleland) 사단장은 다 쓰러져가는 천막 두 동에서 힘들게 공부하는 학생 150여명을 보고 깊은 감명을 받았다.

클리랜드소장은 참모들과 협의해 가평중학원의 신축을 돕기로 결정하고 부대장병들과 함께 모금에 들어갑니다. 클리랜드 사단장의 설명에 동감하는 장교들과 사병들의 모금으로 단시간안에 마련된 2만여달러의 성금은 곧 학교 신축의 기금이 됩니다.
공병장교 벰 호프 중위의 설계도가 완성되고 학교신축의 취지를 이해한 지주들의 희사로 부지가 확보됩니다
학교 부지는 가평읍 대곡리로 정했다.

마침내 가평 주민 모두가 모인 기공식이 열리고 본격적인 교사 신축공사가 시작됐습니다.

미군 공병.수송부대가 시멘트와 목재 건축에 필요한 장비들을 지원했습니다.

학생들과 주민들도 자신들의 학교를 세우는 일에 수수방관하지 않았습니다. 모두들 자기의 집을 짓는 것처럼 정성스럽게 목재를 나르고 돌을 쌓았습니다.



같은해 여름, 전쟁 한복판에 드디어 교실 10개와 강당 1개를 갖춘 학교가 지어졌다.

그리고 마침내 꿈에 그리던 최초의 신축교사가 완성됩니다.
준공식이 열리던 날 학생들과 주민들은 그동안 수고해준 사단장 클리랜드장군과 병사들에게 감사의 마음과 함께 꽃다발을 선사했습니다. 당시 신축교사는 학생들에게 무척 대단한 건축물이었습니다.

주민들은 40사단장인 클리랜드장군의 이름을 학교에 붙이기를 원했지만 클리렌드장군은 자기 이름 대신 한국전쟁 최초의 40사단 전사자인 케네스 카이저(Kenneth Kaiser Jr) 상병의 이름을 붙이기를 원했습니다.
원어로는 '카이저'이지만 당시 가평 주민들은 '가이사'로 불렀다.
그래서 학교이름은 가평가이사 중.고등학교가 됩니다.


클리랜드소장의 이름이 붙여진 운동장.

가평가이사중학교는 최신식 교사를 갖추게되었지만은 정부의 인가를 얻은 정식학교는 아니었습니다. 이때 학교신축현장을 방문하는 등 학교설립에 많은 관심을 보였던 당시 미8군 밴플리트 사령관이 이승만대통령에게 학교인가의 어려움을 건의하게 됩니다.
이승만대통령은 가평군수를 통해 기존 학교와 비교하여 손색이 없다는 내용을 보고받고 학교 인가를 지시합니다. 이리하여 1953년 1월 가평가이사중학교는 정식인가를 받은 정규공립중학교가 됩니다.

1954년 10월 16일 준공된 희망탑엔 이승만대통령의 친필 휘호가 부착되었습니다. 1964년 학교는 개교 10주년을 맞이하여 교사신축에 공헌을 해주었던 클리랜드장군 부부를 초청합니다. 이때 클리랜드 장군과 가이사 상병 동판 부조상과 비문을 희망탑에 부착하는 기념행사가 열립니다.


미 40사단을 통해 이어진 가평고등학교와 미군과의 인연은 50여년의 세월이 지난 지금까지도 계속 이어지고 있습니다.

주한 미8군사령부는 해마다 가평고등학교 졸업식에 참석하여 클리랜드장학금을 수여하고 있으며 가이사 장학기금도 해마다 늘어나고 있습니다.

1972년 공립고등학교 교육법에 따라 학교의 이름은 가평고등학교로 바뀌었지만 아직도 가평고등학교엔 희망탑을 비롯해 가을의 가이사보납제,가이사 체육관 등 미 40사단의 도움을 기념하는 많은 상징물이 많이 있습니다.


당시 학교를 세웠던 사람들은 대부분 세상을 떠났으며 당시 학생들은 이제 초로의 신사가 되어 옛 일을 회고 합니다. 그러나 그들의 정신은 여전히 죽지 않고 후배들을 통해 살아나고 있습니다.

가평고등학교는 지금까지 1만1천여명의 인재를 배출시킨 가평교육의 산실..

경기도 가평의 '가이사 중학원'은 1952년 미40사단 장병들의 도움으로 교실 10개와 강당 1개를 갖추고 개교했다

가평 '가이사 중학원' 준공 기념석에는 '이 학교는 미 제40보병사단장별들이 대한민국의 장래지도자들에게 봉헌한 것입니다. 서기 1952년 8월15일'이라고 적혀 있다

1952년 열린 경기도 가평 '가이사 중학원' 준공식에서 마을 주민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한 학생이 학교 건물을 지어준 미40사단 조셉 클레란드 사단장에게 감사의 꽃다발을 전달하고

'가이사 중학원' 준공후 미40사단장이 미국에서 보내온 열차 3칸 분량의 도서를 기증하고
http://j.mp/en7Q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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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qlstnf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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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린교회는 1953년 신앙공동체를 꿈꾸며 12명이 생활공동체를 시작하며 출발했다.

차별없는 세상을 위한 기독인연대와 한국 성적소수자 문화인권센터는 지난 4일 서울 명동 향린교회에서 ‘하나님과 만난 동성애-기독교의 오만과 편견으로 더 이상 상처받지 않도록’을 개최했다.

조헌정 향린교회 목사는 “자존심을 세우다 생명을 잃는 것은 정말 어리석은 행위”라며 “이명박 대통령이 그렇게 전쟁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면 연평도에 자신의 아들딸부터 데려다 놓으라”했다.

향린교회 및 기장 교단은 정치적으로나 신학적으로도 일반적인 한국의 보수교회에서 바라볼때는

파격적이다 싶을 정도의 진보성을 가지고 있다.

http://blog.ohmynews.com/wskwon21/15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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