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1. 1. 16:29

카주라호 (Khajurāho)

옛 이름은 카르주라바하카(Kharjjūravāhaka).

델리에서 약 400km 떨어진 곳에 있다.

인도 중부 마디야프라데슈주() 북단(쟌시 동남동 약 175km)에 있는 유적.

현재 20개 이상의 힌두교 및 자이나교의 사원이 있는 순례지로 유명한 관광지이다.인구 5000여 명밖에 안되는 작은 촌락으로 전락한 이 도시는 10세기께만 해도 인도에서 세력이 강대하고 경제적으로도 아주 부유했다

1011세기 카주라호를 기반으로 한 찬델라 왕조 세력은 북인도 대부분을 지배했다. 한때 마드야 프라데시주 전역에 걸쳐 폭넓은 지역을 다스릴 만큼 나름대로 커다란 세력을 형성했다.

찬델라 왕조시대에는 이 지방의 주도였으며, 파라슈바나트 사원(자이나교), 차툴부자 사원(힌두교) 등을 비롯하여 약 30개의 사원이 건립되었다.

카주라호는 인도의 중세기인 950년부터 1050년 사이에 달의 신 찬드라의 자손이 세웠다는 찬델라 왕조의 초기 수도로 정착되면서 사원들이

집중적으로 건축되었다.

왕조의 전성기에는 80여개의 사원들이 있었지만,

후에 이슬람 무굴 제국의 아우랑제브에 의해 대부분 파괴되고 현재는 동서남군을 통틀어 20여개만이 남아있을 뿐이다. 카주라호 사원은 1986년 유네스코에 의해 세계 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다.








카주라호 사원들은 대부분 황갈색이나 분홍빛을 띤 사암으로 지어져 있다. 사암은 카주라호에서 20km 떨어진 켄강 부근에서 캐 온 것이라고 한다.

사암은 대리석처럼 정교한 조각이 가능하므로 원하는 형태의 모습으로 사원을 짓는데 용이했을 것이다.

사암의 또다른 특징은 물기를 쉽게 흡수한다는 점인데, 다시말하면 비가 억수처럼 내려도 부딪히는 대신 물기를 흡수함으로서 마찰을 피하게 되는 것이다. 천년이라는 장구한 세월을 비바람에 시달려 왔는데도 원래의 모습이 비교적 원형대로 유지될 수 있었다는 점은 사암의 커다란 장점이었다.

그러나 가장 오래된 서군(西群)의 차우사트 요기니(Chausath Yogini Mandir)사원은(9세기 말) 화강암을 사용하여 형식도 다른 사원과 전혀 다르다.

사원의 이름이 '64'라는 숫자의 의미로 사원에 세워진 사당의 갯수를 의미한다.
거친 화강암으로 만들어진 사원은 카주라호 초기 건축물로, 시바-사가르 연못 남서쪽, 화강암 광맥이 드러난 곳에 자리잡고 있다. 사원은 5.4미터의 우뚝솟은 연단위에 가로 31.4미터, 세로 18.3미터의 사각형모양에 64개의 사당이 만들어진 독특한 기획과 디자인을 지니고 있다. 64개의 사당 중 현재는 35개가 남아 있다.
조그만한 출입구를 통해 들어갈 수 있는 작은 방으로 되어 있는 사당는, 몇겹의 곡선으로 만들어진 시카라(sikhara) 형태로 단순한 지붕을 얹었다. 입구를 향해 뒤쪽 벽에 있는 사당는 가장 크고 메인 성소로 되어 있다.
투박한 외형과 그대로 드러난 울퉁불퉁한 돌재질을 지닌 단순한 외관의 조형에서는 자연의 강인함과 우뚝솟은 연단과 두개로 나눠진 장하(벽) 등의 건축양식의 골격을 드러낸다.






사원은 도시를 중심으로 서쪽, 동쪽, 남쪽 세 그룹으로 흩어져 있지만 사원의 핵심은 서쪽에 있는 사원군이다. 전성기 시절에는 무려 85개나 되는 사원이 이곳을 가득 메웠지만 지금은 22개밖에 남지 않았다.

석공들의 심심함(?)이 빚어낸 작품들이 사원의 운명을 갈랐다. ‘엽기 조각이 있는 서부 사원군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돼 비싼 몸값(입장료)을 받으며 수많은 사람의 철저한 보호를 받는 반면, 그렇지 않은 동부 사원군은 입장료도 없이 거의 버려지다시피 했으니..

누가 보더라도 발바닥에 헤나를 그리는 여자의 조각이 아름다운 동부 사원군의 인물상들 또한 서부 사원군 못지않게 아름다운데 말이다.

사원들은 하나같이 시바나 비슈누 등 힌두신들을 숭배하기 위해 지어졌으며,

스리야를 본존으로 모시는 치트라그프타사찰, 자이나 교의 파르슈바나타, 아디나타, 간타이 등의 사찰 외에는 모두 시바 사원 또는 비쉬누 사원이다.

당시 이곳의 장인들 조각솜씨를 모두 동원하여 지어진 듯 거대하면서도 섬세하고 장중하면서도 여성스러운 멋이 곳곳에 깃들어져 있었다. 사원의 외벽은 하나같이 시바와 비슈누신, 요정들과 아름다운 여인들 그리고 동물들의 모습이 섬세하게 조각되어있어 사원이라기 보다 하나의 거대한 조각작품을 연상시킨다.

처마끝을 여러 층으로 높이 쌓아올린 지붕이 특징이며, 붉은 사암(砂岩)으로 된 벽면에는 중세 인도의 부조를 대표하는 많은 상(), 병사·여인상, 관능의 극치를 표현한 조상(彫像) 등이 새겨 있다.

서부사원군

라크슈마나(Lakshmana Mandir), 비슈바나, 치트라그프타, 데비 쟈가담비, 칸다리야 마하데바(Kandariya Mahadev Mandir)(가장 웅대함),

락쉬마나 사원(Lakshmana Mandir)925년에서 950년 사이에 건축되었고 서부 사원군 중 보존상태가 가장 좋은 사원 중 하나로 비쉬누 신에게 봉헌된 사원으로 가장 큰 볼거리는 춤추는 요정인 압사라(Apsara)로 실제 춤을 추는 듯한 착각을 일으킬 정도로 섬세하게 조각돼 있다.






칸다리야 마하데브 사원(Kandariya Mahadev Mandir)은 카주라호를 대표하는 사원으로 다양한 성행위를 묘사한 미투나(Mithuna)상들이 벽면 가득 조각돼 있다.

1025~50년경 건립 되었으며 사원의 높이는 31m로 내부에 226, 외부에 646개의 조각상이 있다. 미투나 외에 쉬바`바라하`꾸마리 등의 신들에 대한 이야기도 담겨 있다.











두 사원의 조각에서 뚜렷한 세대차이를 느낄 수 있다

락슈마나 사원의 에로틱한 조각들 중 여인들의 모습은 매우 과장되고 풍만하게 조각되어 있는데 반해 마하데브 사원의 조각들은 매우 날씬하고 보다 세련된 모습과 자세를 묘사하고 있었다.

마하트마 간디가 카주라호의 모든 사원을 부숴버리고 싶다라는 말을 했을 정도로 사원의 벽면에는 이곳이 종교 사원이라고는 상상하기 힘들 만큼의 적나라한 모두 80여가지의 남녀교합상이 조각돼 있다.

카주라호는 에로틱한 조각들로 유명해진 곳이지만 신화`생활`역사에 관한 조각들도 많으며 전체적으로 사원들의 보존 상태가 좋고 조각상들은 아름답고 섬세하게 조각돼 예술성도 갖추고 있는 유적지이다.

카주라호의 사원과 조각은 인도 예술만의 독창성과 신성을 지니고 있다. 유연하고 풍만한 젊은 육체를 매끈하고 부드러운 사암과 대리석에 정확히 재현해놓은 것은 전형적인 인도의 조형예술이 지니고 있는 가장 중요한 장점이기도 하다. 동적이면서 영감이 넘치는 인도의 조형예술에는 또한 아름다운 육체의 재현이라는 힌두교 신앙이 반영되어 있다.

1000년 전 찬델라 왕조는 무슨 이유로 사원 외부 장식을 낯 뜨거운 조각상으로 가득 채웠을까? 명확한 답은 아직까지 밝혀지지 않았다.

4세기 경 밧샤야에 의해 쓰여진 인도의 성교지침서인 카마수트라(Kamasutra)에 묘사된 성행위의 자세를 조각한 것이라고 주장하는 이, 당시 북인도에서 강하게 영향력을 지니고 있던 불교에 대항하여 힌두교도들을 사원으로 불러들이기 위해 사원에 감각적인 조각들을 해 놓았다는 이야기도....

천둥과 번개의 신이 처녀기 때문에 남녀 교합상으로 외벽을 장식하면 신들이 낯이 부끄러워 사원을 부수지 못한다고 주장,

요가를 수행하는 명상가들에게 교육적인 목적으로 만들어졌다는 얘기도 있다. 수행자들은 야한 모습을 보고서도 마음이 흔들리지 않는 평상심과 금욕적인 성찰을 위해 미투나 상을 이용했다는 이야기다.

탄트리즘 종교 사상을 강조하는 힌두교 정신에서 비롯됐다는 설을 취하면 그 근거는,

사원은 신과 인간이 만나는 성스러운 장소다. 이런 곳을 인간의 성적 행위를 표현한 조각상으로 가득 메운 것은 단순히 인간의 잠재된 욕망을 표현하기 위함이 아니다.

힌두교라는 종교와 연결된 미투나 상

단순히 쾌락적 욕구를 표현한 것이 아니라 인간과 신, 욕망 끝에 오는 허무주의, 허무주의를 딛고 일어선 새로운 희망, 고통과 한계 상황에서 벗어난 해탈의 의미를 모두 담은 것이다.

남녀 교합상이 이성적 사랑을 대변하는 것이 아니라 종교와 아주 깊은 관계, 그 이상을 맺고 있다.

진정한 힌두교도 들에게 있어 세속(世俗)은 신성한 것이며, 소멸(消滅)역시 불멸의 구원에 이르는 열쇠가 된다. 요컨대 '사랑이 곧 신'이다. 그리고 항상 추구하기는 하지만, 상상이 불가능한 신과 인간의 결합이라는 추상적인 개념은 오직 '꿈도 꾸지 않는 깊은 수면'이나, 성교를 나누며 서로 절정에 도달했을 때의 모든 '소멸'의 순간에서만 경험할 수 있다.

그것은 가장 아름답고, 가장 만족스러우며, 가장 완벽하고, 가장 해탈에 가까운 것이다. 이와같이 힌두교에서 세속적인 인간의 쾌락을 묘사한 예술은 힌두교 사원의 정신성을 능가한다.

모든 것을 포용하는 힌두교의 정신.

, 카주라호의 조각상들은 성적인 에너지를 이용해 절정의 상태에서 자아의식과 우주의식이 하나가 되고 해탈의 경지에 이르는 탄트리즘을 표현하고자 한 것으로 단순히 성적인 쾌락을 위한 조각이 아닌 모든 것을 포용하고자 하는 힌두교의 정신이 담겨 있다는 것이다.

미투나는 인도인들에게 성행위에 관한 교본이 되기도 했다. 평생 한 명의 반려자만 맞이할 수 있는 힌두교의 교리에 따라 평생 서로가 즐겁게 사는 방법을 연구해야 했고 성행위도 그 중 하나였기 때문이다.

인도 카스트의 가장 높은 계급인 브라만 들에게는 카주라호가 하나의 정신적 시험무대로서의 역할을 한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조각상을 보고 흥분하거나 주의가 산만해지지 않는 사람이라면, 그는 진실로 헌신적인 힌두 교도라고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곳에서 남녀교합상을 보며 성욕을 절제하는 정신적인 수양을 하였으며, 요가의 일종인 카르마 요가는 조각상을 보며 마음을 차분하게 하는 방법을 가르쳤다. 성행위의 묘사는 '둘이 곧 하나'인 감각적인 행복과 함께 정신적인 행복의 최고형태를 상징하고 있다.

카르마 요가란 이러한 자극적인 장면 앞에서 침착을 유지하는 방법을 수행자들에게 가르쳐주는 요가이다. 마하트마 간디도 만년의 나이에 카르마 요가를 행한 적이 있다. 이처럼 힌두교는 모든 극단을 포용하고 있다.

동부사원군

힌두교 성향이 강한 서부 사원군에 비해 동부 사원군은 자인교 사원들이 주를 이룬다. 크고 보존 상태가 좋은 빠르스바나뜨 사원 (Parsvanath Mandir)이 볼만하다.






동쪽에 자이나 사원을 건립한 이유는 당시의 재무 장관 격을 맡았던 사람이 권력을 가진 자이나 교도였을 가능성이 크다고 해석하는 주장이 많다. 그때나 지금이나 무소유와 아힘사를 궁극적인 목표로 살아가는 자이나 교도들이 금전과 재물 관리에 능했던가 보다. 이곳에는 파르스바나트, 산티나트, 아디나트 등 3개의 자이나교 사원이 있는데,

외관상으로는 서군의 힌두 사원들과 크게 다를 바가 없으나 조각의 많은 부분에서 차이점을 볼 수 있다. 특히 이곳의 몽골리안 얼굴의 여인상은 묘한 느낌을 갖게 한다.

외벽에는 브라흐마`비쉬누 등의 힌두교 신들이 조각돼 있어 힌두교 사원으로 생각하기 쉽지만 자인교 사원이다.

자이나교는 발가벗고 수행하는 것이 특징인 모양인지 모든 불상의 모습을 하고 있는 조각이 하나같이 발가벗겨져 있으며 남성의 성기까지 세밀하게 조각되어 있다.

남부사원군

남군(南群)의 마지막으로 조성된 두라데오,




차투르브자 등의 제 사찰은 10세기 후반~12세기 전반에 건립된 것으로서 규모도 크며 형식도 잘 갖추어졌다.

이 사원은 동 틀 무렵 특히 신비스럽다한다.


사진

http://blog.daum.net/hisblog/8544368



종교는 나약한 인간성을 토대로 시작되었으며, 통치자들이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하여 적절히 도입하면서 번성되는 것이 아닌가. 인도 토속민족의 국가인 찬델라왕조에서 건립한 카주라호 사원도 그 연장선상에 있는 것이리라.

빈부의 격차도 크고 먹을거리 등이 피폐한 이곳에서 힌두교는 사회를 안정시키는 큰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거대하고 호화스러운 사원을 신분과 관계없이 공유하며 사회적으로 발생할 수 있는 갈등을 원천봉쇄해 버리는 것이다.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0985316

http://www.ozi.co.kr/html/gi_kajuraho.htm

사진

http://blog.daum.net/antiright/12765890

http://ramzy.tistory.com/276

http://blog.ohmynews.com/syung/248935

http://cafe.naver.com/bcny.cafe?iframe_url=/ArticleRead.nhn%3Farticleid=382&


http://blog.chosun.com/blog.log.view.screen?blogId=11307&menuId=114372&listType=2&from=&to=&curPage=4&logId=4060073


'옮겨 쓴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오차( Orcha)  (0) 2012.01.01
무굴제국 (Mughul)  (0) 2012.01.01
사르나트(Sarnath, Sarnātha)  (0) 2012.01.01
sun rise, Sunset over the Ganges  (0) 2011.12.30
Varanasi Ganges  (0) 2011.12.30
Posted by qlstnf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