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 1. 8. 15:07

신의 아들이 신의 이름을 빌어 다스리던 나라도

누가 신의 아들이냐를 왈가왈부하던 그들도

인구밀도가 한계에 접근하면 모두 새로운 질서와 원리를 모색하고, 공통된 당면 과제의 하나는 새로운 땅의 확보다.


새로운 영토가 확보되면. 농민 1인당 식량 생산량 증가하고 상품의 종류가 늘어나고 상공업과 서비스업 등 직종과 종사자가 많아진다. 새로운 직종들을 바탕으로 도시가 발전했고, 이에 따라 상품 유통량은 더욱 늘어났다.


도시는 작은 정치 조직에서 시작 독자성을 꿈꾼다.


15세기의 유럽은 훨씬 불안정한 상태였다.

유럽 주민의 3분의 1 이상을 죽인 것으로 추정되는 14세기 후반의 흑사병은 인구의 지각 변동을 가져왔다. 오랫동안 유럽 질서의 본산이던 교황청의 권위와 권력은 쇠퇴해 갔고, 수십만 내지 수백만 인구 규모의 작은 정치 조직들이 유럽 전역에 할거했다. 그리고 전성기에 이른 오스만제국이 기독교 세계를 동쪽으로부터 압박하고 있었다.


15세기 말 이후 대항해 활동은 생존을 위한 발버둥이었다.

동방에서 전해 받은 모든 기술을 활용해 함대를 조직했으나 터키 함대로부터 지중해 제해권을 빼앗아올 수 없었기 때문에 대서양으로 나갔다.

항해의 목적은 두 가지였다. 큰 목적은 이슬람 세력에 막혀 있던 동방교역의 새 길을 뚫는 것이었고, 작은 목적은 뭐든 닥치는 대로 약탈해 오는 것이었다.


항해 활동을 통해 늘어난 유럽의 부는 소수의 사람들에게 집중되었다.

빈부의 극심한 격차가 온갖 새로운 활동을 위한 동력이 되었고, 급격한 변화를 억제하는 중앙 정부가 유럽에는 없었다. 작은 규모의 국가들은 날로 격화되는 경쟁의 주체로서 변화를 억제하기보다 오히려 촉진하는 역할을 맡았다.


기술의 전면적 발전 가운데 시대적 필요에 부합해 날이 갈수록 집중적으로 발전한 것이 산업 기술과 군사 기술이었다.

생산력 발전이 전쟁의 대형화를 불러오고 전쟁의 대형화가 대량 생산 기술의 발전을 촉진하는 피드백 현상이 일어났다. '부국강병'이란 이름이 붙은 이 피드백 현상 속에서 산업혁명이 일어났다

유럽의 '산업혁명'


각 사회는 각자의 조건에 따라 적합한 진로를 모색하고 있었다. 유럽 한 모퉁이에서 산업혁명이 시작된 것도 그런 모색의 한 갈래였다. 그런데 산업혁명은 다른 지역에서 모색된 진로들보다 강한 공격성을 보였다. 대량 생산 체제의 확장에 필요한 급격한 시장 확대가 외부를 향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산업화에 따른 1인당 생산량의 증대가 급속한 인구 증가를 가능하게 해주었기 때문에 다른 진로들에 대해 경쟁력을 가질 수 있었다.


산업혁명이 궤도에 오르자 인접한 지역에서는 그 뒤를 따르지 않을 수 없었다.

따르지 않으면 약육강식의 경쟁을 견뎌낼 수 없었다. 영국에서 시작해 서유럽을 거쳐 중부유럽으로 산업혁명은 마치 암세포가 번지듯이 퍼져나갔다. 19세기 중엽까지 산업화를 이룩한 유럽 국가들은 근대화의 선진국으로서 국제 무대의 열강이 되었다.

19세기 후반에는 미국, 러시아와 일본이 그 대열의 꽁무니에 붙었다.


19세기 말까지의 산업화는 지역적 착취-피착취 관계를 형성했다.

피착취 지역을 식민지로 확보하는 산업화 선진국들 사이의 경쟁이 제국주의로 나타났다. 산업화의 확장이 자발적 경쟁보다 무력에 의한 강제로 진행되는 단계에 접어든 것이다. 식민지가 된 사회들에게는 산업화의 종속적 위치가 강요되었다.


제국주의 시대의 '세계 체제'였다.


자발적 경쟁을 통해 산업화를 받아들인 나라들은 산업화를 근대화의 중심축으로 채택하면서도 그 이전에 각자 나름대로 모색해 온 근대화의 고유한 의미를 얼마간 병행시킬 수 있었다. 전통이 통째로 무너지지 않고 점진적 변화를 겪을 수 있었던 것이다.


반면 식민지가 된 피착취 지역의 사회에서는 전통이 근대화의 장애물로만 여겨져 파괴 대상이 되었다. 그 보존 가치를 통치국이 결정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기 사회에 적합한 길을 찾을 기회를 잃고 산업화 구조 속의 불리한 위치만을 떠맡게 되었다. 그것이 식민지의 불행이었다.


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60100107191910&Section=04&page=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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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qlstnf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