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주 속임을 당하는 사람은 타인에 대한 관찰이 깊지 못하기 때문이다.
착하기만 한 사람들이 있는데, 악한 자들은 바로 그 점을 이용하여 사리사욕을 채운다.
그래도 우리는 그렇게 살고 싶지 않다.
<삼국지>, <초한지>, <열국지>, <손자병법> 등 우리가 소위 고전이라고 일컫는, '혼란의 시대'를 다룬 작품들 중 9할은 음모와 중상모략의 역사로 꾸며져 있다.
정정당당하게 싸우는 것보다 중상모략을 통하여 상대를 모함하거나 속임수로 상대를 기만하여 혼란에 빠뜨려서 이기는 것이다.
고전에 나오는 통치자들은 대부분 허영심이 강하고 오만한 인물이었다.
그들은 충성스럽고 정직한 자를 좋아하고 소인을 멀리한다고 자처하지만, 진정으로 그런 행동을 한사람은 거의 없었다.
아무 능력이 없어도 그저 충성하고 순종하기만 하면, 통치자들 눈에는 적어도 후환거리가 될 염려는 없는 것처럼 보인다.
출세 가도를 달리는 사람들을 보면 대체로 윗사람의 심리를 잘 간파한다.
윗사람의 속내를 정확히 알아내서 미리 근심을 덜어주기 때문에 윗사람의 입장에서는 그를 좋아하지 않을 수 없다.
관운의 탄탄대로를 달릴 수 있는 첫째가는 비결은 윗사람의 속셈을 잘 헤아리는 것이다.
매사 경직되게 시비곡직을 따지는 놈은 용납되지 않아서 갖가지 비난을 뒤집어 쓴다.
통치자는 겉으로는 누구나 충신이 되어야 한다고 격려하지만, 실제로 그들이 취하는 인재 등용의 기준과 행동을 보면 충신을 용납하지 않고 간신만을 좋아한다.
역사상 간신이 충신보다 더 잘 먹고 잘 살았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니, 우리는 이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사람들은 말이나 글로 간신을 토벌하고 비난하는 데 습관적으로 도취되어 있지만, 실제 행동을 보면 간신이 하는 짓에 부화뇌동한다.
이익을 최상으로 삼고 있다고 전제하면,
책략은 늘 기이함으로 승리를 거두고, 준비하지 않은 틈을 타서 공격타서 공격하고, 번개처럼 공략하는 방식을 실시해야만 승자가 될 수 있다.
지모와 계책을 써서 사람을 해치는 것이 묘책이긴 하지만, 이 방법이 통하지 않을 때 직접적으로 가해하는 것이 많은 사람들의 최후의 선택이다.
목적의식이 강하고 목표가 정확하여 그 위협이 치명적이이어야한다.
가지고 있는 그물을 꺼내고 헌 그물은 수선한다. 빠져 나갈 가능성이 있으면 새 그물을 더 촘촘히 만든다.
난폭하고 고압적인 정책이어야만 사람들을 대세의 흐름에 따르게 만들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권력을 쥐고 있고 여론까지 장악하면 피해자는 억울함을 호소할 곳이 없어지고 세상 사람도 그 진상을 모르게 된다
억울하다. 잘못되었다.
그 것이 통치자의 책임과 연결되면 반역의 싹이 되고 만다.
과도한 위세와 난폭한 권력 밑에서는 설사 지혜가 높은 사람들이라 해도 전혀 쓸모가 없다.
이 정도가 되면 인간관계에서 일정한 거리를 두는 것은 누구에게나 좋다.
친구들끼리는 아무렇지 않은 일이라 해도 소인들에게는 큰 음모를 꾸밀 수 있는 사건이 된다.
겉으로만 보면 증거도 갖추고 있고 법과 이치에도 맞다.
일반 사람들은 견뎌내지 못한다.
무섭다.
'착하게 살자'나 '정직하게 살자'
모두 허망한 이야기인가?
대의명분은 현실 앞에 휴지조각인가?
씁쓸하긴 해도
살벌한 자본주의 경쟁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하여 '사악한 모략'이 얼마나 세상을 살아가는데 효율적임은 인정하자.
문제는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상대를 쓰러뜨려야 한다는 지극히 승리지향적 가치관에 있다.
그 들에게는 오직 그들만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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