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는...

天安門事件(천안문사건-Tiananmen Square protests)

qlstnfp 2011. 6. 5. 00:32

이른바 피의 일요일로 불리는 이 사건

198964일 미명에 민주화를 요구하며 베이징의 톈안먼 광장에서 연좌시위를 벌이던 학생 ·노동자 ·시민들을 계엄군을 동원하여 탱크와 장갑차로 해산시키면서 발포, 많은 사상자를 낸 사건.

당시 베이징에서는, 그해 415일 후야오방(胡耀邦)이 사망한 후, 팡리즈(方勵之) 등 지식인을 중심으로 후야오방의 명예회복과 민주화를 요구하는 대규모 시위가 빈번히 일어나고 있었다. 특히, 학생들은 노동자 ·지식인을 포함한 광범위한 시민층을 대표하여 513일 이래, 베이징대학과 베이징사범대학을 중심으로 전국에서 모인 학생대표들과 함께 톈안먼 광장에서 단식연좌시위를 계속했다. 515일 소련의 고르바초프가 베이징에 도착했으나, 17일 발생한 100만 명이 넘는 대규모시위로 일정을 변경해야만 하는 사태가 발생했다. 이에 당국은 학생들의 시위를 난동으로 규정, 베이징시에 계엄을 선포했다. 한편, 학생들의 요구에 유연한 대응을 보이던 공산당 총서기 자오쯔양(趙紫陽)의 행방이 묘연해지고 그의 해임설이 떠도는 가운데, 덩샤오핑의 후계자로 알려진 양상쿤(楊尙昆) 국가주석과 리펑(李鵬) 국무원 부총리 등 강경파가 주도권을 잡았다. 이들은 63일 밤 인민해방군 27군을 동원, 무차별 발포로 톈안먼 광장의 시위군중을 살상 끝에 해산시켰으며, 시내 곳곳에서도 수천 명의 시민 ·학생 ·군인들이 시위 진압과정에서 죽거나 부상했다.

이 사건은 당시 중 ·소 수뇌회담 취재차 입국했던 외국 기자들에 의해 즉각 전 세계로 보도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