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0-45

석왕사(釋王寺)-.강원도(북한) 고산군 설봉리에 있는 절.

qlstnfp 2009. 10. 22. 15:36








일제강점시기 사진엽서 – 석왕사(釋王寺).
From a set of of monochrome postcards titled "Picture postcard of Chosen. 朝鮮風景繪葉書", published by the Government Railways of Chosen and depicting major tourist attractions of colonial Korea

http://www.flickr.com/photos/kernbeisser/3905410758/in/pool-666616@N21

강원도(북한) 고산군 설봉리에 있는 절.
일제강점기에 31본산 중의 하나였다. 절 이름이 의미하듯 이 절은 태조 이성계가 나라를 세우기 전 무학대사(無學大師)의 해몽을 듣고 왕이 될 것을 기원하기 위해 세웠다고 한다. 서산대사의 〈설봉산석왕사기 雪峯山釋王寺記〉에 의하면, 무학은 꿈을 해몽한 뒤 응진전을 짓고 곧 오백성재(五百聖齋)를 설했으며 천진당(天眞堂)·진헐당(眞歇堂)·인지료(仁智寮)·용비루(龍飛樓) 등을 지었다고 한다. 이성계가 왕이 된 뒤 큰 절이 되었으며 1401년(태종 1)에는 태조가 16일을 머물면서 직접 동구(洞口)에는 소나무를, 뜰에는 배나무를 심었는데 그뒤 소나무의 벌목을 금하고 좋은 배는 진상했다고 한다. 같은 해 5월에 절의 동쪽에 이성계의 명으로 태종이 별궁을 짓도록 했다. 이밖에 〈지봉유설 芝峯類說〉·〈약천집 藥泉集〉에서도 이성계가 석왕사를 창건했다고 기록되어 있으나 이능화(李能和)는 단지 숭불호법을 부회한 것이라고 했다. 그 이유로는 1377년(우왕 3)에 이성계가 동북면도원수(東北面都元帥)로 있으면서 유원(柳源)·정몽주(鄭夢周)·이화(李和) 등이 청주(淸州:지금의 북청군)에 갔을 때 해양(海陽:지금의 길주군) 광적사(廣積寺)가 병화로 폐허가 되었지만 대장경과 불상·법기(法器) 등이 있다는 말을 듣고 김남운(金南運)을 보내어 이것들을 배에 실어오게 하고 보완한 뒤 석왕사에 안치하여 오랫동안 임금을 축수하고 나라의 복을 빌었다는 기록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사실로 미루어 보아 이성계가 이 절의 창건과 관련이 매우 깊음을 알 수 있으며, 1377년에 이미 석왕사가 있었던 것으로 보아 정확한 창건연대는 알 수 없으나 1377년 이전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태종 때는 모든 절의 재산이 몰수당했으나 태조의 원당(願堂)이었던 귀주사와 석왕사만은 제외되었다. 석왕사에는 여말선초의 건물로 알려진 응진전과 호지문(護持門)이 있으며 1732년(영조 7)에 개수한 대웅전·영월루(映月樓)·흥복루(興福樓)·범종루(梵鐘樓)·용비루(龍飛樓)·조계문(曹溪門) 등이 있고, 31본산시대에는 여러 전각을 갖춘 대가람이었으며 48개의 말사를 관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