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라나시의 역사
성지(聖地) 바라나시의 역사
1836년 영국 고고학자들의 발굴을 통해
붓다가 도를 깨닫고 처음으로 설법을 행한 곳이 바라나시임이 밝혀졌다.
붓다는 득도 직후 왜 바라나시를 찾았을까?
BC 7세기부터 흥하기 시작한 바라나시는 당시 모든 경제, 사상의 중심지였다.
불도를 전파하기 위해서
바라나시에서 먼저 검증을 받기로 결심한 붓다의 선택!
바라나시에 관한 최초의 문헌 기록인 현장의 “대당서역기”
그리고 이곳을 찾은 최초의 한국인 혜초의 “왕오천축국전”에도
쉬바의 도시 바라나시에 관한 기록이 남겨져있다고한다..
“바라나시국의 도성은 갠지스에 면해 있다.
천사(天嗣)가 백여 개가 되고 외도가 만여 명이 되는데 모두가 쉬바를 신봉하고 있다.
이곳사람들은 갠지스를 福水라 부르면 아무리 죄가 많아도 이 강에서 목욕하면
죄가 없어지고, 죽어서 유해를 이 강에 넣으면 지옥에 떨어지는 일이 없다고 한다.“
- 현장의 “대당서역기”중에서 -
끝없이 이어진 성벽 안의 미로를 하염없이 걷거나, 강변에 누워 무심하게 강물을 바라보면 문득 삶이 꿈 같고 자신이 환영처럼 보이는 묘한 느낌을 갖게 된다.
새벽에 수행자처럼 맨발로 강가로 걸어나가 떠오르는 해를 바라보면, 문득 세상은 삶과 죽음이 어우러진 구천의 세계로 다가오기도 한다. 강변 이쪽의 이승에서는 죽음이 연기로 피어오르고, 강 건너 저승에서 떠오른 해는 세상을 다시 밝힌다. 그리고 이승과 저승 사이를 흐르는 갠지스강에서 사람들은 두 손 모아 합장을 한 채 빌고 있다. 삶이 죽음이 되고 죽음이 삶으로 순환되는 순간, 추한 것, 더러운 것, 불결한 것, 아름다운 것, 깨끗한 것, 신성한 것은 모두 이름을 잃고 하나의 실재 속으로 사라지는 그 순간, 세상은 한없이 성스러워 보이기도 한다. 이처럼 어떻게 마음먹느냐에 따라서 바라나시는 지옥과 극락과 혹은 구천의 세계를 오가는데, 그 묘한 매력 때문에 오늘도 바라나시에는 순례객과 관광객의 발길이 끊이질 않고 있다.
http://www.segye.com/Articles/News/Culture/Article.asp?aid=20060214000801&ctg1=12&ctg2=&subctg1=12&subctg2=&cid=0101051200000&dataid=200602141402000003
힌두교 고전에서 말하길
‘우주의 탄생은 바라나시에서 시작되었고, 바라나시를 만든 이는 시바신이다“
힌두교도들은 시바신의 삼지창 위에 세워진 도시인
바라나시에서 죽으면 시바신의 도움으로 해탈할 수 있다고 믿는다.
원래 갠지스강은 인간 세상에 있지 않은 천상계의 강이었다. 바라나시에 있던 강물(갠지스강이 아닌)이 지역 사람들이 악행을 저지르며 살아 말라 버리게 되자, 그곳의 왕은 하늘의 신에게 하늘나라에 흐르는 강물을 이곳에 보내 달라고 간절히 기도를 한다. 그의 정성으로 하늘의 신들에게 강물을 받기로 약속을 받았지만 또 다른 고민이 생긴다. 그것은 하늘의 강물이 지상으로 바로 떨어진다면 그 충격에 지상의 생명들이 죽을 수도 있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 왕은 자신의 고민을 해결해 달라며 시바신에게 다시 한번 간절히 기도를 한다.
시바는 그 소원을 들어 주기로 했는데, 그는 히말라야 꼭대기에 서서 하늘에 흐르는 갠지스 강의 물줄기를 틀어 자신의 머리에 떨어지게 했다. 그러자 수많은 물줄기가 시바의 정수리에 떨어지고 그 물은 어깨를 흘러 다리를 타고 히말라야 계곡으로 흘러갔다. 그 물은 바라나시로 다시 흘러서 지금의 갠지스 강이 되었다고 한다. (실제로 갠지스 강의 근원지는 바로 히말라야 이다) 그래서 바라나시는 시바신의 도시라고 말하기도 한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