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는...
베트남 하장
qlstnfp
2012. 6. 2. 22:17
Vietnam Ha Giang
EBS의 세계테마기행 베트남 2부 베트남의 이방인 롤로족 참조
여행기
에서 옮겨 온 글입니다
하장은 월남의 북동쪽에 있어 중국의 광서성과 국경이 있고 광서성의 지형과 매우 비슷한 카르스트 형의 돌산이 기존 험난한 산 에 콩알 박혀있듯 서있는 곳이 많다.
북부 월남은 경치가 아름답고 공장이 없어 공기가 맑으며 산악지대이어서 기온이 낮아 더운 여름에도 이곳은 시원하다.
특히 많은 월남에 사는 소수민족들이 모여 살아 마치 월남이 아닌 다른 나라를 여행하는 느낌이 나는 그런 곳이다.
이곳에는 주로 로로(Lolo)족을 비롯하여 백몽(White H’Mong), 포이(Po Y)자오(Dao),테이(Tay),눙(Nung) 그리고 청몽(blue H’Mong)족들을 만나 볼수 있다.
하장을 가기위해서는 월남 비자를 받고난 후에 다시 하장에 들어갈수있는 허락서를 받아야 한다.
마치 중국 비자를 받고서도 티?各? 들어 가기위해서는 다시 티?? 여행 허가서를 받아야 하는것처럼 말이다.
이 허락서를 받는데 몇일 시간이 걸리므로 입국하기전에 미리 미리 여행사를 통해서 신청 하여야 한다.
이번엔 특히 이곳에서 밖에 만나볼수 없는 로로족을 만나기위해 떠난 나의 3번째 월남여행이다.
이 로로(Lolo)족을 내가 처음 만난곳은 하노이의 박물관에서 였다.
그 박물관 안에 독특한 의상을 입은 남녀 두 밀랍인형을 보고 난 첫 눈에 반했다.
우여곡절 끝에 그들의 의상을 구입하여 집에 돌아와 자세히 보니 각각 다른 색상의 천을 가지고 세모꼴로 작게 접어 사각형의 조각보를 만들어 그 조각을 바지 밑단,상의의 앞섶과 뒷 잔등,뒷 부분을 가리는 뒷치마 에 장식한 것이 너무나 아름다웠다.
특히 이들이 쓰는 긴 목도리 같은 모자와 허리띠는 각양각색의 폼폼까지 달아 얼마나 화려한지 모른다.
마치 보물인듯 마내킹에 입혀 거실에 세워놓고 부엌과 안방을 오며가며 보고 즐거워 해 왔는데 이번에 직접 그들을 만나려는것이다.
로로족은 플라워 로로족과 흑 로로족으로 나누어 지는데 통틀어 700명이 성라(Sung La)마을에 모여 살고있다.
이 산속에 사는 소수 민족들은 농사를 짓고 닭이나 돼지를 키우며 길쌈을 하는등
자급자족을 한다.
그러나 그들이 꼭 필요한 생필품을 구하기 위하여 일주일에 한번서는 장터까지 가야한다.
보통 7일 장이 서는데 어떤 동네는 토요일, 어떤 동네는 일요일에 열린다.
이 장터에서 많은 사람들을 만날수 있고 그들의 의상이나 장식품, 생활 습관 그리고 음식을 대할수 있으므로 나는 이들의 장날에 마추어 하노이(Hanoi)를 떠났다.
사실 산 속에 한 두집 아니면 대여섯집 이렇게 뜨문뜨문 사는곳을 방문하기는 쉽지 않다.
산 저 아래까지 내려가 한 집,또 산 위를 올라가 한 집, 그나마 들일을 나가고 없으면 헛탕을 치게 된다.
그러기에 이렇게 여러 사람들이 모이는 곳으로 그들을 만나기 위해 우리가 찾아가는것이다.
이들은 집에서 키우는 닭,돼지로부터 대나무 광주리,술(밀주),쌀, 콩,야채등등 팔것을 들고와서 팔고 그 돈으로 또 자기들이 필요한 물품을 구입한다.
장터에서 필요한 생필품도 구하지만 오랜만에 친척 친구들과 나들이도 할 수 있는 기회일뿐더러 모처럼 외식?도 하고 오랜만에 친구와 거나하게 한잔하며 이런저런 이야기도 하며 즐길수 있다.
특히 혼기의 남녀가 자연스럽게 만날수 있는 만남의 장소도 되기 때문에 특히 아가씨들은 꼭두 새벽부터 일어나 화려하게 치장하고 수 십리 산길을 마다않고 걸어온다. 그렇기때문의 그들이 한껏 치장한 모습을 볼수있는 것은 듬으로 얻는 소득이다.
또한 이곳은 백 몽족(White H’Mong)들이 많이 사는 곳이다.
나는 백 몽족 여인들이 필수로 입는 장식 허리띠에 수 놓으것을 구입해 갓난 아기들을이 덮는 조각 이불을 취미로 만드는데 이번 여행에서 많이 구입해 두고 두고 이불을 만들것을 생각하니 그렇게 기분이 좋을수 없다.
그리고 흥분된다.
아침 일찍 하노이를 떠난 우리는 가는 길목에서 간단하게 점심 식사를 하고 계속 하장을 향해 갔다.
이곳은 많은 사람이 찾지않는 관광객이 거의 없는 동네이고 월남에서도 가장 낙후하고 빈곤한 곳이라 한다.
그러니 식당도 동네 사람들 위주일 테니 어떨런지는 여러분들의 상상에 맡기고 싶다.
고맙게도 안내인은 도시락 바구니에 이 여행에서 사용할 식탁보,식사도구,컵 나프킨등을 준비하여 차에 넣고 다녔다.
식당에 들어가면 우선 그 집 식탁위를 자기가 가지고 간 식탁보로 덮고 우리들이 사용할 식사도구를 꺼낸다.
물론 물도 넣어가지고 다닌다.
가는길 목에는 마땅하게 물 살 가게도 없기 때문이다.
오늘 하루 종일 가야 저녁쯤에야 하장에 도착 한단다.
하장은 하노이에서 약320 km 북동쪽에 있고 약 7-8시간쯤 걸리는 거리이다.
길이 좋으면 더 빨리 갈수도 있겠지만 …..
“여기부터 하장”이란 글이 쓰인 문을 지나 조금가니 길을 막는 차단기가 있고 일단 정지한 우리차를 소독 연기로 목욕을 시킨후에야 통과시켜 주었다.
하장에서 제일 좋다는 호텔 후이 환(Huy Hoan)은 나를 50년 전 어린 시절로 돌아가 게 해 주었다.
자게가 귀하고 비싸 옷장이나 경대에 조금밖에 박을 수밖에 없었던 시절 멋쟁이 우리 엄마가 갖고 있었던 그런 옷장이 바로 그 호텔 방에 있는것이다.
결혼식을 막 마치고 이 호텔에 든 신혼 부부가 타고온 온 차를 지나 먼지나는 길을 위 아래 다녀봐도 별 볼것도 별 살것도 없는 그런 동네가 하장이였다.
은근히 걱정이 된다.
혹 잘못 온 것이 아닌가 하고……
하루종일 차에 시달려인지 아니면 자게장이 주는 푸근함 때문인지 침대에 눕기가 무섭고 잠이 들었고 아침해가 저 만치 떠 있을 즈음 겨우 눈이 떨어졌다.
오늘은 토요일,
간단하게 월남국수로 아침식사를 마치고 눙족과 백 몽족,그리고 자오족들이 많이 온다는 쿠??티엔(Quyet Tien) 시장을 향해서 떠났다.
오늘은 로로족이 사는 성라를 거쳐 몽족이 많이 사는 동반(Dong Van)까지 간다.
산 모양이 아름다운 산속으로 들어간다.
다니는 차도 없다.
가는 길목에 집은 있지만 사람들이 없는 이상한 동네를 지나게 되었다.
내막인 즉슨 월남 정부에서 큰 길이 있는 동네에 집을 지어 산꼭대기에 사는 소수민족들에게 무상으로 주고 이주하여 살게 하였다고 한다.
그런데 얼마 후 그들은 하나 둘 모두 산으로 돌아가 버려 지금은 아무도 살지 않는 빈 집들이 흉가처럼 이렇게 길 가에 서 있다는것이다.
생활의 습관이란 이토록 힘든가보다.
제작년 태국(Thailand)의 치앙마이(Chiang Mai)에 갔을 때도 이와 흡사한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었다.
산속으로 강가로 좁게 실같이나 있는 길을 따라 가며 과연 무엇이 더 행복할까 생각해 보았다.
강가에 돌로 담을 쌓아놓고 사는 백 몽족 집에 들려 여름에 베면 시원해서 좋을 것같아 곱게 물들인 굵은 모시천에 아플리께로 수놓은 예쁜 방석 덮개도 샀다.
천연 나염을 사용했다는데 몹시도 색갈이 곱다.
이런 천으로 여름옷을 해 입으면 칼리포니아 더위에 “딱”일 것 같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 동안 어느덧 북적북적대는 시장이 있는곳에 도착했다.
차에서 내려 시장으로 들어가는데 곱게 모자를 쓰고 그 위로 빨간 수실을 얹어놓은 자오 여인들이 걸어온다.
한쪽 두루마기 자락을 허리츰에 얹어놓아 멋이 흐른다.
노란 금 이빨을 드러내고 씩 -웃는 여인들의 모나리자 같은 미소
웃는건지 안 웃는건지 알도리가 없는 그리고 부끄러운듯 손으로 가린다.
사진을 찍으려고 하면 숨고 얼굴을 가리다가도 찍은 자기 사진을 보여주면 머릿모양을 가다듬고는 다시 찍으라 한다.
검은 의상의 자오 여인들 사이로 화려한 색갈의 백 몽족 처녀들이 꽃처럼 박혀있다.
금박이한 파란 비단으로 만든 옷에 얼룩이 목도리로 머리를 두르고 둥근 은 목걸이가 햇빛을 받아 빤짝인다.
검은 수건으로 멋드러지게 머리를 맨 눙족의 여인들
푸른색의 단순한 의상이 더 어울리는 산의 사람들
야채 몇포기를 좌판에 얹어놓고 손님을 기다리는 할머니
저녁에 손주들에게 과자라도 사 갈려면 빨리 팔려야 할텐데….
난 가지고 간 사탕(lollipop)을 한줌 쥐어 좌판에 얹어주곤 먹는 시늉을 하니 몇 개 남지 않은 이빨을 들어내며 환하게 웃는 할머니의 행복한 미소가 나에게도 전염병처럼 퍼져온다.
한잔 걸치셨는지 얼굴이 홍시처럼 물든 베레모를 쓴 아저씨가 자기 사진도 한장 찍으란다.
그리고는 안내인에게 사진을 현상해오라고 명령을 하셨단다.
집에 돌아가면 이번 월남 여행 사진은 현상해서 이들에게 보내 주어야 겠다.
그들과 헤어지고 우리는 부지런히 로로(Lolo)족이 사는 성라(Sung La) 마을로 향했다.사진을 크릭하면 큰 사진으로 볼 수 있습니다.
북부 월남은 경치가 아름답고 공장이 없어 공기가 맑으며 산악지대이어서 기온이 낮아 더운 여름에도 이곳은 시원하다.
특히 많은 월남에 사는 소수민족들이 모여 살아 마치 월남이 아닌 다른 나라를 여행하는 느낌이 나는 그런 곳이다.
이곳에는 주로 로로(Lolo)족을 비롯하여 백몽(White H’Mong), 포이(Po Y)자오(Dao),테이(Tay),눙(Nung) 그리고 청몽(blue H’Mong)족들을 만나 볼수 있다.
하장을 가기위해서는 월남 비자를 받고난 후에 다시 하장에 들어갈수있는 허락서를 받아야 한다.
마치 중국 비자를 받고서도 티?各? 들어 가기위해서는 다시 티?? 여행 허가서를 받아야 하는것처럼 말이다.
이 허락서를 받는데 몇일 시간이 걸리므로 입국하기전에 미리 미리 여행사를 통해서 신청 하여야 한다.
이번엔 특히 이곳에서 밖에 만나볼수 없는 로로족을 만나기위해 떠난 나의 3번째 월남여행이다.
이 로로(Lolo)족을 내가 처음 만난곳은 하노이의 박물관에서 였다.
그 박물관 안에 독특한 의상을 입은 남녀 두 밀랍인형을 보고 난 첫 눈에 반했다.
우여곡절 끝에 그들의 의상을 구입하여 집에 돌아와 자세히 보니 각각 다른 색상의 천을 가지고 세모꼴로 작게 접어 사각형의 조각보를 만들어 그 조각을 바지 밑단,상의의 앞섶과 뒷 잔등,뒷 부분을 가리는 뒷치마 에 장식한 것이 너무나 아름다웠다.
특히 이들이 쓰는 긴 목도리 같은 모자와 허리띠는 각양각색의 폼폼까지 달아 얼마나 화려한지 모른다.
마치 보물인듯 마내킹에 입혀 거실에 세워놓고 부엌과 안방을 오며가며 보고 즐거워 해 왔는데 이번에 직접 그들을 만나려는것이다.
로로족은 플라워 로로족과 흑 로로족으로 나누어 지는데 통틀어 700명이 성라(Sung La)마을에 모여 살고있다.
이 산속에 사는 소수 민족들은 농사를 짓고 닭이나 돼지를 키우며 길쌈을 하는등
자급자족을 한다.
그러나 그들이 꼭 필요한 생필품을 구하기 위하여 일주일에 한번서는 장터까지 가야한다.
보통 7일 장이 서는데 어떤 동네는 토요일, 어떤 동네는 일요일에 열린다.
이 장터에서 많은 사람들을 만날수 있고 그들의 의상이나 장식품, 생활 습관 그리고 음식을 대할수 있으므로 나는 이들의 장날에 마추어 하노이(Hanoi)를 떠났다.
사실 산 속에 한 두집 아니면 대여섯집 이렇게 뜨문뜨문 사는곳을 방문하기는 쉽지 않다.
산 저 아래까지 내려가 한 집,또 산 위를 올라가 한 집, 그나마 들일을 나가고 없으면 헛탕을 치게 된다.
그러기에 이렇게 여러 사람들이 모이는 곳으로 그들을 만나기 위해 우리가 찾아가는것이다.
이들은 집에서 키우는 닭,돼지로부터 대나무 광주리,술(밀주),쌀, 콩,야채등등 팔것을 들고와서 팔고 그 돈으로 또 자기들이 필요한 물품을 구입한다.
장터에서 필요한 생필품도 구하지만 오랜만에 친척 친구들과 나들이도 할 수 있는 기회일뿐더러 모처럼 외식?도 하고 오랜만에 친구와 거나하게 한잔하며 이런저런 이야기도 하며 즐길수 있다.
특히 혼기의 남녀가 자연스럽게 만날수 있는 만남의 장소도 되기 때문에 특히 아가씨들은 꼭두 새벽부터 일어나 화려하게 치장하고 수 십리 산길을 마다않고 걸어온다. 그렇기때문의 그들이 한껏 치장한 모습을 볼수있는 것은 듬으로 얻는 소득이다.
또한 이곳은 백 몽족(White H’Mong)들이 많이 사는 곳이다.
나는 백 몽족 여인들이 필수로 입는 장식 허리띠에 수 놓으것을 구입해 갓난 아기들을이 덮는 조각 이불을 취미로 만드는데 이번 여행에서 많이 구입해 두고 두고 이불을 만들것을 생각하니 그렇게 기분이 좋을수 없다.
그리고 흥분된다.
아침 일찍 하노이를 떠난 우리는 가는 길목에서 간단하게 점심 식사를 하고 계속 하장을 향해 갔다.
이곳은 많은 사람이 찾지않는 관광객이 거의 없는 동네이고 월남에서도 가장 낙후하고 빈곤한 곳이라 한다.
그러니 식당도 동네 사람들 위주일 테니 어떨런지는 여러분들의 상상에 맡기고 싶다.
고맙게도 안내인은 도시락 바구니에 이 여행에서 사용할 식탁보,식사도구,컵 나프킨등을 준비하여 차에 넣고 다녔다.
식당에 들어가면 우선 그 집 식탁위를 자기가 가지고 간 식탁보로 덮고 우리들이 사용할 식사도구를 꺼낸다.
물론 물도 넣어가지고 다닌다.
가는길 목에는 마땅하게 물 살 가게도 없기 때문이다.
오늘 하루 종일 가야 저녁쯤에야 하장에 도착 한단다.
하장은 하노이에서 약320 km 북동쪽에 있고 약 7-8시간쯤 걸리는 거리이다.
길이 좋으면 더 빨리 갈수도 있겠지만 …..
“여기부터 하장”이란 글이 쓰인 문을 지나 조금가니 길을 막는 차단기가 있고 일단 정지한 우리차를 소독 연기로 목욕을 시킨후에야 통과시켜 주었다.
하장에서 제일 좋다는 호텔 후이 환(Huy Hoan)은 나를 50년 전 어린 시절로 돌아가 게 해 주었다.
자게가 귀하고 비싸 옷장이나 경대에 조금밖에 박을 수밖에 없었던 시절 멋쟁이 우리 엄마가 갖고 있었던 그런 옷장이 바로 그 호텔 방에 있는것이다.
결혼식을 막 마치고 이 호텔에 든 신혼 부부가 타고온 온 차를 지나 먼지나는 길을 위 아래 다녀봐도 별 볼것도 별 살것도 없는 그런 동네가 하장이였다.
은근히 걱정이 된다.
혹 잘못 온 것이 아닌가 하고……
하루종일 차에 시달려인지 아니면 자게장이 주는 푸근함 때문인지 침대에 눕기가 무섭고 잠이 들었고 아침해가 저 만치 떠 있을 즈음 겨우 눈이 떨어졌다.
오늘은 토요일,
간단하게 월남국수로 아침식사를 마치고 눙족과 백 몽족,그리고 자오족들이 많이 온다는 쿠??티엔(Quyet Tien) 시장을 향해서 떠났다.
오늘은 로로족이 사는 성라를 거쳐 몽족이 많이 사는 동반(Dong Van)까지 간다.
산 모양이 아름다운 산속으로 들어간다.
다니는 차도 없다.
가는 길목에 집은 있지만 사람들이 없는 이상한 동네를 지나게 되었다.
내막인 즉슨 월남 정부에서 큰 길이 있는 동네에 집을 지어 산꼭대기에 사는 소수민족들에게 무상으로 주고 이주하여 살게 하였다고 한다.
그런데 얼마 후 그들은 하나 둘 모두 산으로 돌아가 버려 지금은 아무도 살지 않는 빈 집들이 흉가처럼 이렇게 길 가에 서 있다는것이다.
생활의 습관이란 이토록 힘든가보다.
제작년 태국(Thailand)의 치앙마이(Chiang Mai)에 갔을 때도 이와 흡사한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었다.
산속으로 강가로 좁게 실같이나 있는 길을 따라 가며 과연 무엇이 더 행복할까 생각해 보았다.
강가에 돌로 담을 쌓아놓고 사는 백 몽족 집에 들려 여름에 베면 시원해서 좋을 것같아 곱게 물들인 굵은 모시천에 아플리께로 수놓은 예쁜 방석 덮개도 샀다.
천연 나염을 사용했다는데 몹시도 색갈이 곱다.
이런 천으로 여름옷을 해 입으면 칼리포니아 더위에 “딱”일 것 같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 동안 어느덧 북적북적대는 시장이 있는곳에 도착했다.
차에서 내려 시장으로 들어가는데 곱게 모자를 쓰고 그 위로 빨간 수실을 얹어놓은 자오 여인들이 걸어온다.
한쪽 두루마기 자락을 허리츰에 얹어놓아 멋이 흐른다.
노란 금 이빨을 드러내고 씩 -웃는 여인들의 모나리자 같은 미소
웃는건지 안 웃는건지 알도리가 없는 그리고 부끄러운듯 손으로 가린다.
사진을 찍으려고 하면 숨고 얼굴을 가리다가도 찍은 자기 사진을 보여주면 머릿모양을 가다듬고는 다시 찍으라 한다.
검은 의상의 자오 여인들 사이로 화려한 색갈의 백 몽족 처녀들이 꽃처럼 박혀있다.
금박이한 파란 비단으로 만든 옷에 얼룩이 목도리로 머리를 두르고 둥근 은 목걸이가 햇빛을 받아 빤짝인다.
검은 수건으로 멋드러지게 머리를 맨 눙족의 여인들
푸른색의 단순한 의상이 더 어울리는 산의 사람들
야채 몇포기를 좌판에 얹어놓고 손님을 기다리는 할머니
저녁에 손주들에게 과자라도 사 갈려면 빨리 팔려야 할텐데….
난 가지고 간 사탕(lollipop)을 한줌 쥐어 좌판에 얹어주곤 먹는 시늉을 하니 몇 개 남지 않은 이빨을 들어내며 환하게 웃는 할머니의 행복한 미소가 나에게도 전염병처럼 퍼져온다.
한잔 걸치셨는지 얼굴이 홍시처럼 물든 베레모를 쓴 아저씨가 자기 사진도 한장 찍으란다.
그리고는 안내인에게 사진을 현상해오라고 명령을 하셨단다.
집에 돌아가면 이번 월남 여행 사진은 현상해서 이들에게 보내 주어야 겠다.
그들과 헤어지고 우리는 부지런히 로로(Lolo)족이 사는 성라(Sung La) 마을로 향했다.